우유가 썩으면 배탈이 나는데 치즈는 왜 맛있을까? 인간의 혀가 정한 미생물의 운명, '발효와 부패'
더운 여름, 식탁 위에 똑같이 우유와 삶은 콩을 내버려 뒀는데 어떤 것은 배탈이 나는 상한 우유가 되고 어떤 것은 몸에 좋은 청국장과 요구르트가 됩니다. 미생물이 음식을 갉아먹고 뱉어내는 완벽하게 똑같은 화학 작용인 '부패'와 '발효'가 인간의 입맛에 따라 어떻게 갈리는지 뜯어봅니다.
Antigravity AI · 2022년 8월 3일 · 읽는 데 3분
서론: 똑같이 썩은 건데 왜 냄새가 다를까?
김치, 치즈, 된장, 와인, 요구르트. 이 맛있는 음식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식재료를 오랫동안 방치해서 곰팡이나 세균이 푹푹 갉아먹게 내버려 둔, 한마디로 **'썩힌(발효시킨)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우유를 잘못 방치해서 상해버린(부패한) 것을 먹으면 구토를 하고 심하면 식중독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우유에 균을 넣고 방치해서 만든 요구르트나 치즈는 구수하고 맛있으며 장에도 몹시 좋습니다. 똑같이 미생물이 밥(음식)을 먹고 똥(찌꺼기 가스)을 싸놓은 것인데, 왜 어떤 것은 썩은 쓰레기가 되고 어떤 것은 몸에 좋은 발효 식품이 되는 걸까요? 그 기막힌 차이는 사실 미생물의 의도가 아니라 철저한 인간의 이기적인 분류법에 숨어있습니다.
본론: 밥을 먹는 놈이 다르다 (유익균 vs 부패균)
생물학이나 화학의 관점에서 보면 '발효(Fermentation)'와 '부패(Decay)'는 완벽하게 똑같은 과정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세균, 곰팡이, 효모)들이 먹잇감(음식)에 달라붙어, 자기들 입맛대로 분해해서 쪼개 먹고 화학 물질(가스나 찌꺼기)을 밖으로 뱉어내는 소화 작용일 뿐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어떤 놈(균)이 붙어서 무엇을 뱉어내느냐'**에 따라 갈립니다.
1. 발효: 착한 미생물의 달콤한 똥 (유익균)
우리가 김치를 담글 때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뚜껑을 꽉 닫아 산소를 차단합니다. 그러면 공기를 싫어하는 특별한 미생물인 **'유산균(젖산균)'이나 '효모'**들이 미친 듯이 번식하기 시작합니다.
- 이 착한 녀석들은 배추의 당분(설탕)을 맛있게 냠냠 갉아먹고, 찌꺼기로 새콤달콤한 **'젖산'**이나 톡 쏘는 '알코올(술)', 또는 **'이산화탄소(빵을 부풀리는 가스)'**를 푹푹 뱉어냅니다.
- 이 젖산과 알코올은 인간의 혀에 닿았을 때 감칠맛을 폭발시키고, 산성이 강해 다른 나쁜 식중독균이 배추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며(방부제 역할), 소화를 엄청나게 돕습니다. 우리는 이 착한 화학 변화를 **'발효'**라고 칭송합니다.
2. 부패: 나쁜 깡패들의 지독한 독가스 (부패균)
반대로 음식을 습하고 따뜻한 공기 중에 덩그러니 내버려 둡니다. 이번에는 공기를 좋아하는 사나운 깡패 녀석들인 **'부패균(대장균, 식중독균, 곰팡이)'**들이 날아와 찰싹 달라붙습니다.
- 이 깡패들은 특히 우유나 고기에 있는 '단백질'을 징그럽게 갉아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 단백질을 쪼개 먹고 나서 배설하는 똥(찌꺼기)은 그야말로 지옥의 성분입니다. 계란 썩는 냄새가 나는 '황화수소', 똥 냄새가 나는 '인돌', 톡 쏘는 지린내 '암모니아', 그리고 심각하면 시체를 썩게 하는 '카다베린' 같은 무시무시한 **독성 가스(발암물질)**를 뿜어냅니다.
- 인간이 이 독가스 범벅이 된 고기를 먹으면 세포가 망가지고 구토를 하며 쓰러집니다. 우리는 이 끔찍한 단백질의 분해 과정을 **'부패'**라고 부르며 쓰레기통에 냅다 버립니다.
3. 인간의 입맛이 정한 이기적인 잣대
하지만 발효와 부패의 경계선이 항상 과학적으로 무 자르듯 딱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나라 사람들에게는 침이 고이는 맛있는 '발효' 식품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구역질이 나는 '부패'한 쓰레기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 세계에서 가장 냄새가 지독한 스웨덴의 썩힌 통조림 '수르스트뢰밍(Surstromming)'이나 한국의 '홍어'를 떠올려 보세요. 톡 쏘는 암모니아 가스 냄새 때문에 외국인들은 "이 썩은 부패물을 어떻게 먹어!"라며 기겁하지만, 그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혀를 마비시키는 최고의 '발효' 별미입니다.
결론: 냉장고가 빼앗아 간 미생물의 마법
냉장고가 없던 먼 옛날, 인류가 한겨울이나 혹독한 항해를 버티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고기나 채소를 소금과 균에 절여 '발효'시켜 오랫동안 보존하는 지혜 덕분이었습니다.
발효와 부패는 자연계의 청소부(미생물)들이 죽은 생명체를 다시 흙과 에너지로 돌려보내는 거대한 순환의 수레바퀴일 뿐입니다. 미생물들은 인간을 위해 젖산을 만들거나 인간을 죽이려고 식중독균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밥을 먹었을 뿐인데, 인간의 미각과 장이 그것을 꿀꺽 삼켜보고 "아프지 않으면 발효! 배탈 나면 부패!"라며 멋대로 이름을 붙였을 뿐입니다. 오늘도 우리 집 냉장고 구석 밀폐 용기 속에서는 발효와 부패의 아슬아슬한 미생물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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