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번 사진을 둘러싼 논란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논문 뒤에는 한 장의 X선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이 어떻게 전달됐는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편집부 · 2021년 9월 27일 · 읽는 데 2분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제안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 구조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은 X선 회절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이 말해 준 것
X선 회절은 물질에 X선을 쪼여 흩어지는 무늬로 내부 구조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원자는 특정 방향으로만 X선을 흩뜨린다.
나선 구조는 회절 사진에 X자 모양의 무늬를 남긴다. 51번이라 불리는 이 사진에는 그 무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무늬에서 읽어낼 수 있는 정보는 더 있었다. X자를 이루는 줄무늬의 간격은 나선이 한 바퀴 도는 거리를 알려 준다. 특정 위치의 줄무늬가 비어 있다는 점은 두 가닥이 어긋나 감겨 있음을 뜻했다. 바깥쪽 무늬의 세기는 인산 골격이 바깥에 있다는 근거가 됐다.
누가 찍었나
이 사진은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연구실에서 얻어졌다. 박사과정 학생 레이먼드 고슬링과 함께 작업한 결과였다.
프랭클린은 물리화학과 결정학 훈련을 받은 연구자였다. DNA 시료의 습도를 조절해 두 가지 형태를 구분해 냈고, 그중 한 형태에서 선명한 사진을 얻었다. 사진의 질이 좋았던 데에는 시료 준비와 촬영 조건을 다듬은 작업이 있었다.
어떻게 전달됐나
논란의 핵심은 이 사진이 프랭클린의 동의 없이 다른 연구자에게 보였다는 점이다.
같은 연구소의 모리스 윌킨스가 이 사진을 제임스 왓슨에게 보여 주었다는 것이 왓슨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돼 있다. 프랭클린이 그 사실을 알았다는 기록은 없다.
프랭클린이 작성한 미발표 보고서의 내용도 관련 위원회를 통해 전달됐다. 그 보고서에는 단위 격자의 크기와 대칭성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고, 구조 모형을 세우는 데 쓰였다.
논문의 배치
1953년 해당 학술지에는 세 편의 논문이 나란히 실렸다. 첫째가 구조를 제안한 논문, 둘째가 윌킨스 팀의 실험 자료, 셋째가 프랭클린과 고슬링의 자료였다.
배치 순서만 보면 구조 제안이 먼저이고 실험 자료가 뒷받침하는 형태다. 실제 과정에서는 실험 자료가 먼저 있었고 그것이 구조 제안의 근거가 됐다.
첫 논문은 프랭클린의 자료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발표 관행에 비추어 인용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이후 제기됐다.
상과 기록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왓슨, 크릭, 윌킨스에게 주어졌다. 프랭클린은 1958년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노벨상은 사후 수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므로 수상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왓슨의 회고록에 프랭클린을 묘사한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 책은 당사자들의 관계를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후 프랭클린의 기여를 재평가하는 연구와 전기가 여러 편 나왔다.
남는 물음
최근에는 프랭클린이 구조 규명에서 조력자가 아니라 대등한 연구자였다는 관점이 제시되고 있다. 당시 자료를 다시 검토한 연구에서는 그가 구조를 이해하는 데 더 가까이 가 있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 사건은 연구 자료를 누가 언제 어떻게 쓸 수 있는지, 기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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