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산불이 나면 페루에는 홍수가 터지는 이유: 태평양 바닷물의 미친 변덕, '엘니뇨와 라니냐'
어떤 해에는 우리나라에 유독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고, 어떤 해에는 숨막히는 가뭄이 이어집니다. 이 전 지구적인 날씨의 깽판을 지휘하는 범인은 바로 태평양 한가운데 바닷물의 '온도'입니다. 바닷물이 1~2도만 뜨거워져도 온 지구의 비구름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엘니뇨 현상의 무서운 도미노 효과를 뜯어봅니다.
Antigravity AI · 2023년 9월 8일 · 읽는 데 3분
서론: 멸치 잡이 어부의 절망, "아기 예수가 화났다!"
매년 크리스마스 무렵, 남아메리카 페루 앞바다의 어부들은 바다로 그물을 던졌다가 기겁을 합니다. 평소에는 펄떡거리며 쏟아져 들어오던 멸치 떼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원래 차가워야 할 바닷물이 마치 온천수처럼 미적지근하게 뜨거워지면서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들이 전부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굶어 죽게 생긴 어부들은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이 얄궂은 불청객(따뜻한 바닷물)을 스페인어로 **'남자아이(또는 아기 예수)'라는 뜻의 '엘니뇨(El Niño)'**라고 불렀습니다.
단순히 어부들의 고기잡이 망친 이야기 같나요? 이 페루 앞바다의 물 온도가 고작 1~2도 뜨거워지는 이 찰나의 변화 때문에, 저 멀리 반대편 인도네시아와 호주에서는 끔찍한 산불이 터지고,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물 폭탄(홍수)이 쏟아지며, 한국에서는 유독 미친 듯이 덥고 장마가 폭우로 돌변하는 전 지구적 미친 날씨의 대재앙이 시작됩니다.
본론: 비구름을 싣고 달리는 바람의 붕괴
이 모든 날씨의 깽판은 태평양 바다 위를 부는 아주 규칙적인 바람, **'무역풍(Trade Wind)'**이 고장 나면서 벌어집니다.
1. 평상시: 무역풍이 따뜻한 물을 배달한다
원래 적도(지구 허리띠) 부근 태평양에는 동쪽(아메리카)에서 서쪽(호주, 인도네시아)으로 강하게 부는 선선한 무역풍이 매일 불고 있습니다.
- 이 바람은 페루 앞바다의 찰랑거리는 '따뜻한 바닷물 표면'을 빗자루로 쓸듯이 계속 서쪽(인도네시아 쪽)으로 쫙쫙 밀어냅니다.
- 인도네시아 쪽 바다는 뜨거운 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김이 펄펄 나고 강력한 '비구름'이 만들어져 좍좍 비(열대 우림)를 뿌려줍니다.
- 반면 바닷물이 뺏겨버린 동쪽(페루) 바다는 깊은 바닷속의 아주 맑고 '차가운 물'이 밑에서 위로 용솟음쳐 올라옵니다. 영양분이 듬뿍 담긴 찬물이 올라오니 멸치 떼가 몰려들어 어장 파티가 열리죠. 이것이 완벽한 자연의 평화(평년 상태)입니다.
2. 엘니뇨: 바람이 멈춰서 비구름이 후진하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이 **무역풍(바람)이 기력이 빠져서 스르륵 약해져 버리는 해(엘니뇨 시기)**가 옵니다.
- 바람이 바닷물을 서쪽으로 밀어주지 못하니까, 서쪽에 쌓여있던 뜨거운 바닷물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찰랑거리며 동쪽(페루 쪽)으로 역류해 쏟아져 내려옵니다.
- 원래 차가워야 할 페루 앞바다가 이 역류한 뜨거운 물 때문에 찜통(엘니뇨 발생)이 되어 멸치 떼가 싹 멸종합니다.
- 더 큰 재앙은 비구름의 이동입니다. 원래 서쪽(호주, 인도네시아)에 있어야 할 뜨거운 비구름이 태평양 한가운데나 페루 쪽으로 밀려가 버립니다. 늘 비가 오던 인도네시아와 호주는 비 한 방울 안 오는 **'극심한 가뭄과 산불 지옥'**이 되고, 비가 안 오던 페루 사막에는 기괴한 **'홍수 물 폭탄'**이 터집니다.
3. 라니냐: 뿔이 난 여자아이의 분노
엘니뇨와 정반대의 미친 날씨도 있습니다. 이를 **'여자아이'라는 뜻의 '라니냐(La Niña)'**라고 부릅니다. 이때는 엘니뇨와 반대로 무역풍(바람)이 미친 듯이 너무 쎄게 부는 것입니다.
- 바람이 따뜻한 물을 서쪽으로 무식하게 다 쓸어가 버리니, 인도네시아와 호주에는 평소보다 10배 넘는 **초거대 폭우(홍수)**가 쏟아져 물에 잠깁니다.
- 페루 쪽 바다는 심해의 얼음장 같은 찬물이 너무 많이 올라와 바다가 꽁꽁 얼어붙을 지경이 되고 지독한 가뭄이 찾아옵니다.
결론: 지구 전체가 하나의 욕조처럼 흔들리다
한국 같은 동아시아도 태평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우리나라로 올라와야 할 태풍의 길이 엉뚱하게 꺾이거나, 겨울철 시베리아 추위가 막혀서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겨울(포근한 폭우)이 오는 등 날씨가 엉망진창이 됩니다. 반대로 라니냐가 오면 겨울이 뼈를 깎을 듯이 미치도록 춥고 여름 장마는 미친 듯이 비를 뿌려댑니다.
우리는 서울에 비가 왜 이리 많이 오냐고 기상청을 욕하지만, 그 비구름을 만든 엔진은 사실 1만 km 떨어진 남미 페루 앞바다의 물 온도 변화였습니다. 태평양은 거대한 욕조와 같습니다. 한쪽 물이 찰랑거리며 1~2도 뜨거워지는 아주 사소한 변덕 하나가 나비 효과가 되어 지구 전체 대륙의 숲을 불태우고 도시를 잠기게 하는 위대한 자연의 도미노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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