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만 쳤을 뿐인데 배추가 쪼그라드는 마법: 농도를 맞추려는 물의 필사적인 이동, '삼투압'
김장을 할 때 빳빳하던 배추에 소금을 팍팍 치면, 몇 시간 뒤 배추가 흐물흐물해지며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입니다. 반투과성 막을 사이에 두고 농도를 똑같이 맞추기 위해 맹물이 소금물 쪽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가는 위대한 생명 유지의 법칙, '삼투 현상'을 쉽게 뜯어봅니다.
Antigravity AI · 2021년 3월 8일 · 읽는 데 3분
서론: 소금을 맞은 배추는 왜 땀을 뻘뻘 흘릴까?
김장철 어머니가 커다란 대야에 빳빳하고 싱싱한 배추를 쫙 갈라 넣고 굵은소금을 인정사정없이 팍팍 뿌려댑니다. 몇 시간이 지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밭에서 갓 뽑은 것처럼 빳빳하던 배추가 숨이 푹 죽어 흐물흐물해져 있고, 대야 바닥에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엄청난 양의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습니다. 소금은 물이 아닌데, 도대체 이 많은 물은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요?
이것은 소금이 배추를 물리적으로 짓눌러서 즙을 짠 것이 아닙니다. 빳빳한 배추 세포 '속'에 들어있던 맑은 수분이, 껍질을 뚫고 밖으로(소금 쪽으로) 필사적으로 탈출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신기한 자연의 법칙을 **'삼투압(Osmotic pressure)'**이라고 부릅니다.
본론: 농도를 맞추려는 자연의 완벽한 밸런스
1. 반투과성 막의 마술 (통과하는 놈과 못 하는 놈)
배추 잎을 이루는 세포들은 아주 얇고 투명한 껍질(세포막)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껍질은 아주 교활한 문지기인 **'반투과성 막'**입니다.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서 덩치가 작은 '물 분자'는 맘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지만, 덩치가 큰 '소금 분자'나 '설탕 분자'는 절대 통과시키지 않고 튕겨냅니다.
2. 농도의 법칙: 싱거운 곳에서 짠 곳으로 물이 달린다
자연계의 모든 물질은 어떻게든 서로 섞여서 '농도를 똑같이(평형)' 맞추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배추 껍질(막)을 기준으로, **배추 속은 그냥 맹물(저농도)**이고, **배추 밖은 어머니가 뿌린 굵은소금(초고농도)**이 묻어있습니다.
- 자연의 법칙에 따라 밖의 엄청나게 짠 소금이 배추 안으로 밀고 들어가서 농도를 맞추려 합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소금 덩어리는 배추 껍질 구멍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 소금이 못 들어가니까 농도를 맞출 방법은 딱 하나뿐입니다. 배추 속에 있던 싱거운 '맹물'이 껍질을 뚫고 밖으로 콸콸콸 빠져나가서, 바깥의 엄청나게 짠 소금을 묽게 희석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 물이 밖으로 싹 다 빠져나가 버렸으니 빵빵하던 배추 세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흐물흐물(숨이 죽게)해집니다. 이렇게 농도를 맞추기 위해 농도가 낮은 곳(맹물)에서 높은 곳(소금)으로 물이 훅 빨려 들어가는 현상을 **'삼투 현상'**이라고 합니다.
3. 일상 속 소름 돋는 삼투압의 지배
이 삼투압은 단순한 김장 비법이 아니라 생명체가 살아가는 가장 끔찍하고도 중요한 법칙입니다.
- 목욕탕 쭈글이 손: 맹물 목욕탕에 오래 앉아있으면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집니다. 내 몸속 피(짠물)가 목욕탕 물(맹물)보다 더 짜기 때문에, 농도를 맞추려고 목욕탕 물이 내 피부를 뚫고 몸 안으로 막 쑤시고 들어와 피부가 퉁퉁 불어버린 것입니다.
- 식물이 물을 먹는 법: 식물의 뿌리는 삼투압으로 물을 빨아들입니다. 뿌리 속을 흙보다 더 '짠(고농도)' 상태로 만들어두면, 흙 속의 맹물이 뿌리 안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오며 나무 꼭대기까지 물을 길어 올립니다.
- 설탕에 절인 잼이 안 썩는 이유: 딸기를 엄청난 설탕에 졸여서 잼을 만들면 몇 년이 지나도 곰팡이가 안 핍니다. 세균이나 곰팡이가 잼에 닿자마자, 잼의 무시무시한 고농도 설탕(삼투압)이 세균 몸속의 수분을 밖으로 쪽 빨아먹어 0.1초 만에 미라로 만들어 죽여버리기 때문입니다.
결론: 조난 당해 바닷물을 마시면 안 되는 이유
만약 무인도에 표류해서 목이 마르다고 짠 바닷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어떻게 될까요? 내 핏속으로 들어온 바닷물은 내 몸의 세포보다 농도가 훨씬 짭니다. 삼투압의 법칙에 의해, 쪼그라든 세포 속의 아까운 수분마저 핏속의 소금물을 묽게 만들기 위해 밖으로 몽땅 빠져나가 버립니다. 결국 물을 마셨는데 오히려 온몸의 세포가 바짝 말라 비틀어져 죽는 끔찍한 탈수증에 걸리고 맙니다.
삼투압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농도의 차이를 맞추기 위해, 거대한 물줄기를 멱살 잡아 끌고 가는 생명의 가장 조용하고 강력한 물리 법칙입니다.
이어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