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양면성을 보여준 과학자 프리츠 하버
그가 만든 공정은 수십억 명을 먹였고, 그가 주도한 무기는 전장에서 사람을 죽였다. 한 사람 안에 두 일이 함께 있었다.
편집부 · 2024년 10월 8일 · 읽는 데 2분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의 질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같은 사람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가스 사용을 주도했다.
질소를 붙잡다
대기의 78%는 질소다. 그러나 질소 분자는 삼중결합으로 단단히 묶여 있어 생물이 그대로 쓰지 못한다.
20세기 초 유럽은 비료 원료를 남미에서 수입한 조분석에 의존하고 있었다. 매장량에 한계가 있었고, 인구는 늘고 있었다.
하버는 1909년 고온 고압에서 촉매를 써서 질소와 수소를 결합시키는 방법을 실험실에서 성공시켰다. 카를 보슈가 이를 공장 규모로 키웠다. 이 공정으로 만들어진 비료가 없었다면 현재의 인구가 유지되기 어려웠으리라는 평가가 널리 인용된다.
같은 화합물의 다른 쓰임
암모니아는 질산으로 바뀌고, 질산은 폭약의 원료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해상 봉쇄로 조분석 수입이 끊겼을 때, 독일이 전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 공정이 지목된다. 식량을 늘리려고 만든 기술이 전쟁을 지속시키는 조건이 됐다.
독가스
하버는 전쟁 중 화학무기 개발을 이끌었다. 1915년 염소 가스가 전장에서 대규모로 사용됐고, 그는 현장에서 살포를 지휘했다.
그의 주장은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결과적으로 희생을 줄인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당시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내 클라라 이머바르는 화학자였고 남편의 작업에 반대했으며, 살포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18년 노벨상 수상이 발표됐을 때 여러 나라에서 항의가 있었다.
이후
전쟁이 끝난 뒤 하버는 해수에서 금을 추출해 배상금을 마련하려는 연구를 진행했다. 해수의 금 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중단됐다.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연구소를 떠나야 했다. 그가 독일을 위해 한 일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듬해 망명 중 사망했다.
그가 살충 목적으로 개발에 관여한 계열의 약품이 이후 다른 형태로 학살에 쓰였다. 그의 친척 일부가 그 희생자에 포함됐다.
무엇을 묻게 하는가
하버의 생애는 기술의 쓰임이 개발자의 의도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같은 공정이 비료와 폭약을 함께 만들어냈다.
동시에 개인의 선택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질소 고정은 목적과 결과가 어긋난 사례지만, 독가스 개발은 명시적인 선택이었다.
연구자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이 사례가 자주 인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의 이중용도 문제와 개인의 판단 문제가 한 사람의 생애 안에 함께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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